장거리 연애의 현실, 첫사랑의 끝이 아닌 시작
2020년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영화 <키싱부스 2(The Kissing Booth 2)>는 전편의 달콤한 첫사랑의 기억 위에 ‘현실’이라는 보다 무거운 문제를 더한 하이틴 로맨스다. 1편이 첫사랑의 설렘과 우정 사이의 갈등을 주제로 삼았다면, 2편은 사랑이 지속되기 위해 필요한 ‘신뢰’와 ‘거리의 장벽’이라는 보다 성숙한 감정에 집중한다.
전편에서 엘(조이 킹)과 노아(제이콥 엘로디)는 비밀 연애 끝에 사랑을 확인하며 행복한 결말을 맞이했다. 하지만 <키싱부스 2>는 바로 그 이후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노아는 하버드에 입학하며 먼 도시로 떠났고, 엘은 여전히 고등학교 3학년으로 남아 있다. 각자의 생활 속에서 멀어진 두 사람은 점차 불안과 오해, 외로움에 시달린다.
장거리 연애라는 설정은 많은 10대 커플들이 직면하는 가장 큰 고민 중 하나다. 영화는 이 문제를 단순히 ‘바람을 피울까 말까’의 윤리적 갈등으로 소비하지 않고, 그 안에 있는 감정의 섬세한 결을 따라간다. 물리적인 거리뿐 아니라, 심리적인 거리감, 그리고 새로운 환경에서 생겨나는 불신과 자격지심 등이 쌓이며, 결국 ‘사랑’이라는 감정이 시험대에 오르게 된다.
<키싱부스 2>는 이러한 흔들리는 감정을 중심축으로 삼으며, 단순한 틴 로맨스를 넘어 감정의 깊이를 더한다. 여전히 유쾌하고 사랑스럽지만, 동시에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부딪히는 감정적 진실을 정직하게 풀어낸다.
새로운 인물, 새로운 감정 – 마르코의 등장이 의미하는 것
전작에서는 노아와 엘의 비밀스러운 사랑이 중심이었다면, <키싱부스 2>에서는 삼각관계라는 새로운 갈등 구조가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엘의 학교에 전학 온 마르코(테일러 자카르 페레즈)는 잘생기고, 노래 잘하고, 춤까지 잘 추는 완벽남이다. 그는 단순한 ‘방해자’ 캐릭터가 아닌, 엘의 감정에 진짜로 영향을 주는 인물로 등장한다.
마르코는 엘과 키싱부스 이벤트를 준비하며 가까워지고, 댄스 대회를 함께 준비하며 두 사람은 빠르게 친밀해진다. 이 과정에서 엘은 점차 노아에 대한 불안감과 마르코에 대한 호감 사이에서 갈등하게 된다. 관객 입장에서도 단순한 선택의 문제처럼 보이지 않는다.
노아가 하버드에서 새로운 여학생 클로이(메이지 리처드슨-셀러스)와 가까워지고 있다는 사실, 연락이 점점 줄어들고 엘이 자신이 그곳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느끼는 순간, 마르코는 그녀에게 새로운 안정감을 제공한다. 이 감정은 단순한 일시적 흔들림이 아니라, 현재의 엘에게 매우 현실적이고 진지한 감정이 된다.
특히 마르코는 단지 ‘비주얼’로 승부하는 인물이 아니다. 그는 엘의 고민을 듣고 공감하며, 그녀의 장점을 알아봐 주는 사람이다. 단순히 노아의 대체자가 아니라, ‘다른 방향의 사랑’이라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이는 영화의 갈등 구도를 더욱 입체적이고 설득력 있게 만든다. 관객들은 엘의 선택을 비판하기보다는, 함께 고민하고 이해하게 된다.
우정의 균열과 성장의 순간 – 리와 엘의 관계는 여전히 핵심
<키싱부스> 시리즈의 중심에는 언제나 엘과 리의 ‘평생 친구’ 관계가 있다. 그들의 관계는 단순한 서브 플롯이 아니라, 영화 전체의 방향성과 정서를 결정짓는 중요한 축이다.
1편에서는 엘이 노아와의 연애를 숨기며 리와 갈등을 겪었고, 2편에서는 또 다른 균열이 발생한다. 이번에는 엘이 리에게 ‘하버드 진학’이라는 계획을 말하지 않은 것이 문제의 시작이다. 두 사람은 항상 함께하는 삶을 전제로 모든 계획을 세워왔지만, 엘의 내면에는 점점 더 복잡한 감정이 자리잡고 있다. 노아에 대한 사랑, 마르코에 대한 흔들림, 그리고 리와의 우정 사이에서 그녀는 또다시 ‘자기 자신’을 잃어간다.
리 역시 새로운 여자친구인 레이첼과의 관계를 엘이 자꾸 방해하고 있다는 생각에 지치고, 그들은 서로에 대한 기대와 오해 속에서 자꾸 부딪힌다. 결국 영화는 우정도 사랑처럼 노력과 배려 없이는 유지될 수 없다는 사실을 말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 시리즈가 ‘엘의 성장’을 중심으로 진행된다는 점이다. 전편에서는 사랑을 얻기 위한 용기, 이번 편에서는 우정과 사랑 사이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한 ‘균형감’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과정은 결코 쉽지 않다. 실수하고, 상처 주고, 눈물 흘리며 배우는 것이다. <키싱부스 2>는 그 감정의 흐름을 꾸밈없이 보여주며 진정성을 확보한다.
경쾌하지만 진지한 톤 – 전형적인 틴무비를 뛰어넘는 감정의 깊이
<키싱부스 2>는 밝고 발랄한 하이틴 무비 특유의 유쾌한 톤을 유지하면서도, 주제적으로는 보다 진지하고 성숙한 문제를 다룬다. 영화는 여전히 화사한 색감과 빠른 편집, 경쾌한 배경음악으로 가득하지만, 캐릭터들의 내면은 더 복잡하고 진지해졌다.
댄스 대회를 준비하는 장면들은 시각적으로도 화려하고, 엘과 마르코의 호흡이 빛나는 장면이지만, 그 안에는 엘의 감정적 혼란이 겹쳐져 있다. 반면 노아와 엘이 다시 마주치는 장면은 서늘하고 정적이며, 대화의 어색함과 불안이 묻어난다.
또한 클로이와의 갈등은 ‘신뢰’의 본질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사랑하는 사람의 친구가 이성일 때,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는가? 이것은 단순한 질투의 문제가 아니라, 사랑이라는 관계가 유지되기 위한 기본 조건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진다.
감정적으로 무겁고 복잡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영화는 전체적으로 부담스럽지 않다. 이는 시나리오의 균형감과 연출의 감각 덕분이다. 어른들의 간섭이 적고, 청춘들이 스스로의 문제를 풀어가도록 내버려두는 서사는 자유롭고 주체적인 성장 이야기를 가능케 한다.
성숙해가는 사랑, 계속되는 고민 – 여전히 성장 중인 청춘
<키싱부스 2>는 단순히 ‘1편의 후일담’이 아니라, 캐릭터와 감정이 모두 성장한 진짜 속편이다. 1편에서 첫사랑의 설렘과 우정의 갈등을 경험한 엘은 이제 사랑을 지키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고민하게 된다. 그것은 단지 ‘좋아하는 감정’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사랑은 거리와 환경, 감정의 변화와 신뢰라는 복합적인 요소들이 얽혀 있는 관계다. <키싱부스 2>는 이 현실적인 문제를 유쾌하면서도 진지하게 풀어내며,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틴로맨스를 만들어낸다.
우정과 사랑 사이에서의 고민, 새로운 사랑의 가능성과 오래된 관계에 대한 책임, 그리고 그 사이에서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한 노력. 엘의 감정은 곧 관객의 감정이 되고, 영화가 끝난 후에도 쉽게 잊히지 않는 여운을 남긴다.
성숙해지는 사랑은 때로 아프지만, 그 아픔 속에서 우리는 진짜 나를 만나게 된다. <키싱부스 2>는 그 과정을 유쾌하고 감동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며, 여전히 청춘의 성장기를 응원하게 만드는 따뜻한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