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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학개론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 첫사랑의 설계도

by 계란언니 2025. 7.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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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은 왜 늘 미완성인 채로 남는가

영화 《건축학개론》은 우리 모두의 마음 한 켠에 자리한 첫사랑의 기억을 소환한다. 이용주 감독의 섬세한 연출 아래, 이 작품은 단순한 멜로 영화의 구도를 넘어 ‘기억의 건축’을 모티프로 삼아, 감정의 구조를 정교하게 설계해낸다. 제목부터가 상징적이다. 건축학개론은 실재하는 학문이지만, 영화 속에서는 인간의 감정과 관계 또한 설계와 축조, 해체와 재건의 과정을 겪는 구조물처럼 다뤄진다. 특히 이 영화는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교차 편집을 통해 두 인물의 감정선과 세월의 흔적을 유기적으로 엮는다. 현실에 안주한 서연(한가인)과 여전히 마음에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승민(엄태웅)은 다시 재회함으로써 과거를 돌이켜보고, 잊힌 감정들을 다시 마주하게 된다. 이들이 처음 만난 스무 살 무렵의 대학 시절, 서툴고 진심이었으며 무엇보다 ‘시작’이었던 사랑은 누구에게나 보편적으로 다가온다. 수지와 이제훈이 연기한 젊은 시절의 두 주인공은 현실과 감성 사이에서 갈등하는 청춘의 모습을 담담하게 그려낸다. 《건축학개론》은 과거의 감정이 단순히 아련한 기억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나를 구성하는 중요한 조각임을 보여주며 관객의 마음을 두드린다. 사랑은 종종 완성되지 않지만, 그 미완성의 기억이 오히려 가장 순수하고 오래 남는다는 메시지가 영화 전반을 관통한다.

잊은 줄 알았던 감정의 되살아남과 그 미묘한 균열

《건축학개론》의 본론은 한 번쯤 경험해봤을 첫사랑의 기억, 그 감정의 되살아남에 대한 묘사에 있다. 오랜 시간이 지나고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 두 주인공은, 오래된 캠퍼스 건물처럼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 성인이 된 서연은 아버지가 남긴 낡은 집을 다시 짓기 위해 우연히 건축가가 된 승민을 찾고, 이로써 두 사람의 인연은 다시 시작된다. 영화는 과거 회상 장면과 현재의 만남을 교차하며, 처음 사랑이 시작되던 풋풋한 감정과 다시 마주한 어른의 감정을 대조적으로 그려낸다. 젊은 승민은 소심하고 말 한 마디 꺼내기 어려워하는 인물이지만, 그의 진심은 음악과 관심, 작은 행동들을 통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반면 서연은 보다 적극적이고 솔직한 성격으로, 때로는 승민을 당황하게 만들기도 한다. 두 사람의 교류는 마치 정교하게 설계된 구조물처럼 차곡차곡 쌓여간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예상치 못한 갈등, 오해, 말하지 못한 진심은 결국 둘 사이의 균열을 만든다. 그리고 그 균열은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대로 남아 있다. 성인이 된 승민은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고, 서연은 그때의 상처를 끌어안고 살아왔다. 재회한 순간, 그들은 다시 설계도를 펼치지만, 그곳엔 완공된 건물 대신 미완성의 벽체와 허물어진 기둥만이 남아 있다. 영화는 이 감정의 구조적 결함을 감성적으로 묘사하면서도, 누구나 그 틀 속에서 한 번쯤 겪어봤을 사랑의 구조를 제시한다. 결국 《건축학개론》은 '기억'이라는 설계 위에 지어진 사랑의 공간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영화이다.

완성되지 않아도 잊히지 않는 감정, 그것이 첫사랑이다

《건축학개론》의 결론은 명확하지 않다. 두 사람은 재회하지만 사랑이 다시 시작되지는 않는다. 이것이 이 영화의 가장 아름다운 점이자 동시에 현실적인 지점이다. 많은 멜로 영화들이 과거의 연인을 재회시키고, 새로운 사랑으로 이어지게 하는 로맨틱한 판타지를 선택하지만, 이 영화는 그렇지 않다. 오히려 관객에게 ‘첫사랑은 그 자체로 의미 있고,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더욱 소중한 감정’이라는 메시지를 조용히 건넨다. 마지막 장면에서 승민이 서연의 집 설계를 마무리하고 떠나는 장면은 마치 과거의 감정을 건축물로 표현하고, 그것을 완성한 뒤 비로소 감정적으로도 정리를 마친 듯한 인상을 준다. 완공된 집은 그들의 사랑이 비록 현실에선 미완성으로 끝났지만, 기억 속에서는 온전히 남아 있다는 상징이기도 하다. 이는 우리 모두가 가슴속에 간직한 한 조각의 추억, 어쩌면 용기 내어 말하지 못했던 감정의 결정체일 것이다. 《건축학개론》은 말한다.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기에 아름답다.” 하지만 그것은 과거의 이야기에 그치지 않는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감정의 복잡함과 인간관계의 미묘함을 이해하는 데 있어, 그 미완성의 사랑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일깨운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이 영화는 단순한 멜로물이 아니라 세월과 감정, 시간의 흐름 속에서 인간의 본질적인 감정을 건축학적으로 접근한 철학적 영화가 된다. 한편으로는 따뜻하고, 한편으로는 뼈아픈 여운을 남긴 《건축학개론》은 결국 관객 스스로의 ‘첫사랑의 설계도’를 펼쳐보게 만드는 힘을 가진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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