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의 감정에 예술성과 잔혹함을 입힌 넷플릭스 누아르
2023년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발레리나》는 한국형 누아르 장르를 새로운 감각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정병길 감독의 연출 아래, 전종서가 주연을 맡아 냉정하면서도 깊은 감정의 내면을 가진 복수자의 모습을 선보인다. 이 영화는 여성 중심 복수극이라는 측면에서 《마이 네임》, 《킬복순》 등과 비교될 수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절제된 대사와 감정, 그리고 시각적 미장센이 강조된 작품으로 평가된다. 제목 ‘발레리나’는 단순히 직업적 상징을 넘어, 복수를 감정적으로 표현하는 예술적 은유로 기능한다. 영화는 극단적으로 건조한 톤을 유지하면서도, 그 안에서 넘치는 감정의 흐름을 은유와 시각적 상징으로 풀어낸다. 본 리뷰에서는 영화의 서사 구조, 인물 설정, 연출 스타일을 중심으로 《발레리나》가 어떻게 감정과 복수의 경계를 예술적으로 승화시켰는지를 분석하고자 한다.
절친을 위한 복수, 빈틈없이 압축된 플롯의 강렬함
《발레리나》의 핵심 서사는 매우 단순하다. 주인공 옥주(전종서)는 과거 경호원이었으며, 친구 민희(박유림)가 성범죄를 당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자 그 복수를 결심한다. 단지 이 복수라는 목적 하나만으로 전개되는 영화는 불필요한 플래시백이나 설명 없이 직선적으로 흐른다. 영화의 전체 러닝타임이 약 90분에 불과하지만, 그 속에 압축된 감정의 밀도는 무척이나 크다. 관객은 왜 옥주가 그토록 집요하게 복수를 수행하는지에 대한 감정적 공감을 논리적 설명이 아닌, 눈빛과 액션, 공간과 음악을 통해 체감하게 된다. 복수를 위한 움직임 속에서 민희의 부재는 계속해서 떠오르며, 관객은 이 복수가 단순한 정의 실현이 아닌 '미처 지키지 못한 죄책감의 카타르시스'임을 느낀다. 서사 구조상 미니멀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감정의 본질을 더욱 도드라지게 만든다. 이는 과장된 대사나 클리셰 없이도 복수의 당위성과 감정선을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데 성공한 방식이라 할 수 있다.
전종서의 눈빛 연기와 무언의 복수, 캐릭터의 침묵이 말하는 것
《발레리나》의 가장 큰 미덕 중 하나는 주인공 옥주라는 캐릭터가 감정을 대사로 설명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전종서는 이 역할을 통해 폭력성과 감정을 동시에 가진 인물을 매우 절제된 방식으로 표현했다. 말보다는 행동, 감정보다는 표정, 그리고 복잡한 서사 대신 감각적인 장면 구성으로 인물의 내면을 드러낸다. 옥주는 살인을 계획하고, 차분히 복수를 진행하면서도 내면에서는 죄책감과 슬픔, 분노, 공허함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이러한 감정은 전종서 특유의 묵직한 눈빛과 걸음걸이, 그리고 공간을 활용한 움직임 속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그녀는 킬러도, 슈퍼히어로도 아니며, 단지 한 명의 인간으로서 자신이 지키지 못한 친구에 대한 책임감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존재다. 이처럼 전종서가 연기한 옥주는 감정과 액션 사이의 경계를 허물며, 캐릭터 중심 복수극의 새로운 전형을 만들어낸다. 무엇보다도, 그의 침묵은 때로 가장 강력한 대사보다 더 큰 울림을 준다.
정병길 감독의 연출 미학, 폭력 속에서도 시적인 장면들
정병길 감독은 이전에도 액션 연출에 능숙한 감독으로 알려졌지만, 《발레리나》에서는 이전과는 다른 정제된 감각을 보여준다. 영화 전반에 흐르는 색감은 차갑고 건조하며, 음악 또한 감정을 과장하지 않고 오히려 절제된 분위기로 이끌어간다. 특히 복수의 마지막 장면에서 옥주가 민희의 흔적과 마주하는 순간은, 대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시적이고도 폭력적인 아름다움을 동시에 느끼게 만든다. 카메라 워크는 매우 절제되어 있으며, 과도한 클로즈업이나 급박한 편집을 피함으로써 관객이 감정적으로 호흡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긴다. 또한 공간 활용에 있어서도, 지하 클럽, 고속도로, 모텔 등 각 장면마다 특정한 감정과 분위기를 극대화시키는 장소들이 설정되어 있으며, 이는 단순한 미장센을 넘어 복수의 단계마다 내면의 변화를 시각적으로 설계한 결과라 할 수 있다. 《발레리나》는 '예술로서의 복수극'이라는 새로운 기준을 제시한 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