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되기 전, 가장 순수했던 감정의 기록
영화 <퍼스트 타임(The First Time, 2012)>은 제목 그대로 ‘처음’의 감정을 섬세하게 그려낸 청춘 로맨스다. 단순한 틴에이저 로맨스물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 안에는 첫사랑의 설렘과 불안, 낯선 감정에 대한 혼란, 성장의 아픔이 진솔하게 녹아 있다. 감정을 감정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자꾸 머뭇거리며 돌아가는 청춘들의 모습이, 현실의 10대 혹은 막 성인이 된 시기의 우리를 떠올리게 하며 자연스럽게 몰입하게 만든다.
줄거리는 단순하다. 고등학생 '데이브'는 오랫동안 짝사랑한 친구 '제인'에게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고 맴돌고 있다. 어느 날 우연히 한 골목에서 ‘오브리’라는 여자아이와 대화를 나누게 되고, 서로의 고민과 삶을 솔직하게 털어놓는 가운데 미묘한 감정이 생겨난다. 오브리는 대학생 남자친구가 있지만, 데이브와의 대화를 통해 자신의 감정을 다시 들여다보게 되고, 결국 두 사람은 예상치 못한 ‘첫사랑’의 순간을 함께 겪는다.
이 영화의 특별한 점은, 첫사랑이란 거창한 사건이라기보다는, 아주 조심스럽고 서툴지만 진심이 담긴 대화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처음이라서 더 불안하고, 그래서 더 애틋한 그 감정이 이 영화의 핵심이다.
말보다 중요한 건 ‘느낌’ — 진짜 대화를 그린 영화
<퍼스트 타임>의 매력은 사건이 아닌 ‘대화’에 있다. 두 주인공 데이브와 오브리는 영화 내내 긴 대화를 나눈다. 그 대화 속에는 사랑, 가족, 미래, 관계에 대한 고민이 가득하고, 그것이 인물들의 내면을 차츰 드러내는 방식으로 사용된다. 이 영화는 ‘대화’가 단순히 시간을 때우는 수단이 아니라, 서로를 알아가고 스스로를 이해하는 진정한 창구임을 보여준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나는 골목 장면부터 인상적이다. 데이브는 자신의 짝사랑 이야기를 털어놓고, 오브리는 그를 놀리듯 조언하지만, 금세 그 안에 자신의 복잡한 감정을 담아낸다. 그날 밤, 오브리는 데이브에게서 편안함과 솔직함을 느끼고, 데이브 역시 오브리에게 끌리기 시작한다. 이들의 대화는 단순한 연애 감정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거울이 되어주는 순간을 의미한다.
또한, 두 사람은 서로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을 갖는다. 그 마음은 어설프고 서툴지만, 그렇기에 더 진심으로 느껴진다. 대화는 감정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이어지며, 서로의 마음이 가까워지는 과정을 현실감 있게 그려낸다. 무작정 고백하거나, 클리셰 가득한 사랑의 대사는 없다. 대신, 실제 우리가 10대 시절 느꼈던 감정처럼 어색하고 돌려 말하는 진심이 있다.
첫 경험의 불안함, 그리고 진짜 ‘첫사랑’의 의미
<퍼스트 타임>은 ‘첫사랑’을 이야기하지만, 동시에 ‘첫 경험’을 조명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두 주인공은 감정적으로 점점 가까워지고, 결국 서로에게 끌려 하룻밤을 함께 보내지만, 그 순간은 로맨틱하지 않다. 오히려 매우 현실적이다. 어색하고, 당황스럽고, 실망도 따른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이 영화는 틴로맨스 장르의 기존 공식에서 벗어난다.
영화는 첫 경험을 성적인 완성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그보다는 감정의 성장 과정으로 접근한다. 처음이라는 것의 무게, 감정이 맞물리지 않을 때의 어색함, 기대와 현실 사이의 간극을 이 영화는 고스란히 보여준다. 그리고 그 모든 혼란을 겪고 난 후, 두 사람은 진짜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게 된다.
‘첫사랑’이란 서로가 완벽해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서툴고 어색하지만 끝내 상대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려는 노력에서 피어난다는 메시지를 이 영화는 전한다. 두 사람은 결국 사랑이 무엇인지 정답을 얻지 못하지만, 함께 고민하고 성장하는 과정을 통해 사랑을 배워간다. 그것이 진짜 ‘첫사랑’이다.
현실적이기에 더 공감되는 청춘 로맨스
많은 청춘 영화들이 판타지처럼 첫사랑을 그리지만, <퍼스트 타임>은 달랐다. 이 영화는 낭만적이면서도 현실적인 감정을 정직하게 보여준다. 우리가 사랑을 처음 시작했을 때, 그 감정이 마냥 달콤하지 않았던 것처럼, 영화 속 인물들도 불안과 긴장을 함께 안고 있다.
특히 오브리라는 캐릭터는 매우 현실적이다. 그녀는 남자친구가 있음에도 감정적으로 외롭고, 부모와의 관계에도 답답함을 느낀다. 데이브 역시 연애 감정을 잘 몰라서 친구에게 자문을 구하고, 실패하고, 스스로 부끄러워하기도 한다. 이들은 특별한 능력이 있는 사람도, 눈부신 청춘도 아니다. 그래서 더 공감되고, 그래서 더 마음을 울린다.
또한 음악과 촬영 역시 과장되지 않다. 잔잔한 배경음과 조용한 분위기의 미장센은 인물들의 감정선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인위적인 클라이맥스 없이 감정을 따라 흘러가는 연출이 매우 안정적이다. 이는 오히려 청춘의 ‘진짜 얼굴’을 더 잘 보여주는 방식이다.
‘처음’의 기억을 떠올리게 만드는 영화
<퍼스트 타임>은 우리 모두의 ‘처음’을 떠올리게 만드는 영화다. 첫사랑, 첫 이별, 첫 감정의 혼란과 설렘까지. 영화는 그것을 아주 담백하게, 그러나 깊이 있게 보여준다. 누군가에게는 평범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그 속에 담긴 감정은 결코 가볍지 않다.
특히 이 영화는, 처음이라서 망설였고, 그래서 더 기억에 남았던 그 시절의 감정을 간직한 사람이라면 반드시 한번쯤 되새기고 싶은 작품이다. 서툴지만 진심이었고, 낯설었지만 따뜻했던, 그 소중한 ‘처음’을 다시 한 번 마음에 새기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