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킬복순 완벽한 킬러이자 엄마인 그녀 선택의 칼끝에 선 인간 드라마

by 계란언니 2025. 7. 16.
반응형

킬러와 엄마, 두 얼굴을 지닌 여성의 이야기

영화 《킬복순》은 ‘완벽한 킬러이자 미완의 엄마’라는 독특한 설정을 내세운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로, 장르의 경계를 넘나드는 액션 누아르다. 한국 영화계에서는 보기 드문 여성 중심 액션극이며, 특히 주인공이 킬러이자 엄마라는 극단적인 이중적 역할을 수행한다는 점에서 강한 인상을 남긴다. 전도연이 연기한 '길복순'은 청부살인 업계의 전설적 인물이지만 동시에 십대 딸을 둔 엄마다. 이 설정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롭지만, 영화는 단순한 액션이나 스릴러에 머무르지 않고, 부모됨의 윤리, 개인의 선택, 조직과 권력의 구조 등을 함께 고민하게 만든다. 《킬복순》은 강렬한 액션과 철학적 질문이 공존하는 작품으로, 장르적 쾌감과 감정적 깊이를 동시에 추구한 결과물이다. 본 리뷰에서는 영화의 줄거리, 연기, 미장센, 그리고 서사 구조를 중심으로 이 작품의 매력을 상세히 분석해보고자 한다.

완벽한 킬러, 그러나 미완의 엄마 – 캐릭터의 정체성에 대하여

《킬복순》의 핵심은 길복순이라는 인물이 품고 있는 정체성의 균열이다. 그녀는 외부적으로는 ‘킬링 에이전시’ M.K. Ent.에서 최정상급으로 군림하는 청부살인자이며, 내부적으로는 딸 재영과 살아가는 평범한 중년의 엄마다. 영화는 이 모순된 두 역할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 애쓰는 한 여성의 내면을 치밀하게 파고든다. 복순은 일을 할 때는 냉혹하고 철두철미하지만, 딸 앞에서는 감정을 억누르고 어색한 거리감을 느끼는 미숙한 부모로 남는다. 그 괴리는 이 작품이 단순한 액션물에 그치지 않고, 복잡한 인간 심리극으로 확장되는 데 핵심 역할을 한다. 특히 복순이 살인을 예측하는 ‘가상 시뮬레이션’ 능력을 통해 전략을 짜는 장면은 그녀가 얼마나 완벽한 킬러인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그 냉철함과 인간다움 사이의 충돌을 더욱 극명하게 보여준다. ‘완벽한 살인자일수록 더 결핍된 감정의 소유자일 수 있다’는 이 영화의 전제가 설득력을 얻는 지점이다.

딸과의 거리, 조직과의 갈등 – 극의 중심을 이루는 대립 구도

복순과 딸 재영 사이의 관계는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감정선이다. 십대 사춘기를 겪는 재영은 엄마와 대화를 피하고,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려 한다. 복순은 그런 딸에게 가까이 다가가려 하지만, 자신이 킬러라는 정체를 숨겨야 한다는 부담 때문에 결정적인 순간마다 진심을 표현하지 못한다. 영화는 이러한 이중성과 거리감을 통해 ‘부모가 된다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한편으로, 복순은 소속된 킬링 에이전시 M.K. Ent.와도 깊은 갈등을 겪는다. 그녀의 능력을 탐내는 후계자 차민희, 감시자 역할을 하면서도 인간적인 애정을 드러내는 차 대표, 그리고 조직 내부의 권력 게임 속에서 복순은 점차 ‘살아남기 위한 선택’이 아닌 ‘버텨야 할 이유’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가족과 조직, 감정과 임무 사이에서 흔들리는 복순의 내면은 단순히 스릴러적 긴장을 넘어서 인간적인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액션과 미장센, 그리고 여성 서사의 새로운 가능성

《킬복순》은 액션의 완성도 면에서도 매우 높은 수준을 자랑한다. 특히 복순이 적을 마주한 상황에서 가능한 모든 선택지를 ‘가상 시뮬레이션’처럼 예측하는 장면들은 신선한 방식으로 긴장감을 유도한다. 이러한 연출은 전통적인 액션영화의 정면 충돌 방식에서 벗어나, 전략적 사고와 감정의 조화를 보여주는 새로운 방식이라 평가받는다. 전도연은 기존의 연기 스펙트럼을 뛰어넘는 강도 높은 액션을 대부분 직접 소화했으며, 이는 캐릭터와 배우의 경계를 흐리게 할 만큼의 몰입감을 제공한다. 영화의 색감과 조명, 도시적 공간 활용 등도 ‘도회적 누아르’ 분위기를 형성하는 데 기여하며, 여성 킬러 중심의 서사가 자칫 희화화되지 않도록 진지한 톤을 유지한다. 복순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특별한 감정만을 요구받지 않으며, 오히려 인간의 보편적인 고뇌와 선택이라는 범주에서 이야기되는 점은 이 영화가 여성 중심 서사의 새로운 지평을 연 중요한 성과다.

복수의 미학보다 깊은 ‘살아가는 이유’에 대한 고찰

《킬복순》은 단순히 스타일리시한 액션 영화로서의 쾌감을 제공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이 작품은 한 인간이 킬러라는 비정상적 삶을 살면서도, 동시에 부모로서의 책임과 인간적인 연대를 포기하지 않으려는 내면의 투쟁을 다룬다. 길복순이라는 인물은 냉철하고 강인하지만, 동시에 외롭고 서툴며, 보호하고 싶은 존재 앞에서는 무너질 줄도 안다. 영화는 이 모순된 감정들을 하나의 인물 안에 녹여내며, 관객으로 하여금 킬러라는 비현실적 존재를 현실적인 인간으로 받아들이게 만든다. 나아가 ‘누군가를 죽이는 일’보다 ‘누군가를 지켜내는 일’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어렵고 숭고한 일인가를 일깨운다. 《킬복순》은 액션 장르가 품을 수 있는 가장 인간적인 이야기이며, 삶과 죽음, 사랑과 거짓 사이에서 우리가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를 묻는 묵직한 질문으로 남는다.

반응형